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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나의 묘한 인연

by 조한일 2025. 2. 16.

아침 일찍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어보았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맡으며 이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곳에서 공연을 본 적이 없는데, 왜 마치 수십 번은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아침일찍 찍은 세종문화회관

 

 

아마도 이건 우리 세대가 가지 특별한 정서 때문이 아닐까? 1978년에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은 내가 자라온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서울의 상징적인 건물이었다. TV에서는 수시로 이곳에서 열리는 공연 소식을 전했고, 신문에서도 문화면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였다. 광화문을 지날 때마다 늘 보아왔던 이 건물은, 어느새 내 기억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출퇴근길에 수없이 지나쳤던 이곳, 때로는 약속 장소의 상징으로, 때로는 길을 알려줄 때의 기준점으로 자주 언급했다. "세종문화관 앞에서 만나자" " 세종 문화회관에서 우회전 하면 돼"이런 말들을 수없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공연을 보러 들어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50대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이런 아쉬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우리 세대는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를 겪으며, 문화생활이라는 것을 사치로 여기며 살아왔다.? 아니다 어쩌다 보니 문화생활에 등안시 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늘 '나중에'로 미뤄둔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나중'이라는 시간이 벌써 수십 년이 지나버렸다. 세종문화회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아직도 이 건물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친숙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지 못한 그런 관계처럼 말이다.

 

요즘 들어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을까? 주말이나 조금이나마 짬이 난다면 클래식 공연이나 뮤지컬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젊은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문화예술의 가치를. 이제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바라보기만 했던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문화회관은 어쩌면 우리 세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지만, 정작 그 안에 문화예술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말이다, 조금이나마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찍은 이 사진이 새로운 시작이 되길 나 스스로에게 기대한다. 더 이상 세종문화회관을 그저 지나치기만 하는 건물이 아닌,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50대의 새로운 도전, 이제부터 시작해 보자